소녀상의 여정은 계속된다
‘평화의 소녀상’이 브룩헤이븐에 보금자리를 찾기까지 여정은 길었고, 마지막까지 아슬아슬했다. 애틀랜타 한인회관에서는 소녀상 제막을 축하하기 위한 전야제 분위기가 무르익었던 6월 29일 밤 8시. 같은 시각 브룩헤이븐 시청에서는 사뭇 긴장감이 흘렀다. 시의회 정기회의에 일본 영사와 주로 타주에서 온 일본인계 미국인, 일본인 등 12여명이 참가해 소녀상 반대 목소리를 높였기 때문이다. 이들은 위안부가 자발적인 매춘부였다거나, 소녀상이 일본계 미국인에 대한 혐오 정서를 조장한다거나, 한국의 베트남 파병군과 주한미군도 위안부와 다를 바 없는 제도를 운영했다는 등, 역사적 사실과 소녀상의 의미를 왜곡하거나 물타기를 시도하며 소녀상을 폄훼했다. 제막을 불과 몇시간 앞둔 마당에 설치를 취소하거나, 적어도 비문 내용에서 일본에 대한 언급이라도 삭제해달라는 요구였다. 글렌데일 소녀상을 조롱하고 야스쿠니 신사참배 같은 기행으로 알려진 백인 텍사스 주민 토니 마라노도 발언했다. 그는 다음날 제막식에도 나타나 혹여 행패를 부리진 않을까 우려를 낳기도 했고, 그 다음날에도 소녀상을 조롱하는 듯한 사진을 찍어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렸다. 이처럼 일본 정부와 극우세력의 소녀상 건립 저지 시도는 마지막 순간까지 계속됐다. 또, 연방대법원까지 글렌데일 소녀상 철거 소송을 물고 늘어졌던 이들의 집요함은 애틀랜타 소녀상에 대한 훼방 시도 역시 끝이 아님을 시사한다. 지난 2월 민권센터는 소녀상 설치가 “우리의 사명에 더할나위 없이 부합하는 일”이라며 요란한 기자회견까지 열었지만, 경제력을 앞세운 일본 정부의 강한 반대에 직면하자 1개월만에 손바닥 뒤집듯 결정을 번복했다. 민권센터의 후안무치함보다 일본 정부의 가공할 수완이 빛을 발했다. 다카시 시노즈카 총영사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소녀상 건립준비위원회의 다음 행보를 예측하고 도라빌, 둘루스, 존스크릭 같이 한인 밀집 지역의 시정부를 찾아다니며 선수를 쳤다. 브룩헤이븐시도 예외가 아니었다. 존 언스트 시장은 소녀상 설치 논의가 공론화 되기 전부터 시노즈카 총영사가 면담을 요청해왔다고 밝혔다. 설치가 결정된 후에는 인근 지역의 주하원의원까지 나서 반대 로비를 폈고, 시노즈카는 브룩헤이븐 영문 언론 인터뷰에서 위안부 여성들이 댓가를 받은 자발적 매춘부라는 망언까지 내뱉으며 저지에 총력을 기울였다. 전문적인 조직으로 추정되는 댓글부대가 지역 언론 웹사이트에서 극렬한 반대 여론 몰이를 시도하고 시의원들에게 이메일 폭탄을 보낸 것은 물론이다. 결과적으로 이런 논란은 건립준비위원회 측에 뜻하지 않은 선물이 되어 돌아왔다. 헬렌 김 위원은 “논란 덕분에 애틀랜타에서 위안부 문제가 조명을 받기 시작했고, 시민들의 의식속에 자리를 차지할 수 있게됐다”고 말했다. 소녀상은 일단 ‘블랙번2’ 공원 한가운데 자리를 잡았지만, 그 여정은 끝나지 않았다. 이 공원의 관리비를 지불하는 인근 주민들의 반대 여론이 아직 식지 않았기 때문이다. 소녀상 건립을 비밀리에 추진하는 과정에서 주민들의 의견이 전혀 반영되지 않았고, 아파트 단지 안에 위치한 조용한 공원에 정치적 논란거리를 들여오는데 대한 거부감도 남아있다. ‘리포터뉴스페이퍼스’ 도 익명의 시 관계자를 인용해 “브룩헤이븐시 다른 곳으로 이전하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소녀상이 모습을 드러낸 이상, 주민들의 여론이 돌아설 여지도 충분하다. 매일 이 공원을 산책한다는 한 백인 노인은 1일 소녀상을 살펴보며 “너무 아름답다. 몇주동안 나무 박스가 놓여 있어서 흉했는데, 이렇게 아름답고 의미가 깊은 동상인 줄은 몰랐다”며 “나를 포함해 많은 주민들이 시측의 일방적인 행보에 반대해왔다. 하지만 실제로 보니 생각이 달라졌다”며 기뻐했다. 조현범 기자